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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의 가정에서 태어난 어떤 사람이 있었다.

부모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란 그는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을 마치고 점수에 맞춰 대학에 들어갔다.

입시 공부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에 젖어 실컷 놀던 것도 잠시,

중간에 군대를 갔다 와서 다시 복학을 하고보니 그의 나이 24세였다.

 

다시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집과 학교만을 오가며 열심히 취직 준비를 한 결과

졸업과 동시에 괜찮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때 그의 나이 27세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회사에서 하는 일들이 거의 대부분

초등학교에서 배운 지식만으로도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때 그는 한 가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삶의 3/1정도를 ‘교육’만 받으면서 죽어라고 준비만 하는 유일한 생물이 인간이 아닐까?

그러나 그는 직장 생활을 열심히 했고, 좋은 여성을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그는 행복하게 살아갔다.

그런데 결혼 후 오랫동안 전세로만 살다 보니 집을 장만하는 것이 문제였다.

부부는 하고 싶은 일, 먹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집을 갖기 위해 노력한 끝에 10년 만에 아늑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 때 그의 나이 38세였다.

그는 또 다시 의문이 생겼다.

자신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삶의 6/1을 보내는 동물이 인간 말고 또 있을까?

집도 장만했고 이제는 좀 여유를 갖고 삶을 즐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아내는 생활비의 거의 절반을

아이들 학원비화 과외비로 지출해야 한다며 다시 허리띠를 졸라맸다.

 그렇게 자식들을 열심히 교육시켜 둘 다 대학까지 졸업시키는데 25년의 시간이 걸렸다.

 

큰 아이가 직장 잡고 결혼하여 분가하고 둘째인 딸이 시집갈 나이가 되자

 어느새 그의 나이 60세가 다 되어 갔다.

 

마지막으로 부부동반 세계여행을 갈 목적으로 모아 두었던 돈을

고스란히 딸 혼수 장만하는데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딸이 신혼여행을 떠나던 그 시간에 하늘에선 눈이 내리고 있었다.

강아지 한 마리가 눈을 맞으며 거리를 신나게 뛰어다니는 것이 보였다.

그 때 문득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말이 있었다.

 

“개만도 못한 놈!”

 

60세인 그 눈 내리던 어느 겨울날,

그는 또 다시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정말 인간이 동물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살면서 우리는 누구나 한번씩 그 눈 내리는 60세의 겨울을 맞이한다.

이미 그 겨울을 지나간 이도 있고, 앞으로 10년 후, 20년 후.

그 길 위에 서 있을 수도 있다.

그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자.

 

“과연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아왔는가?”

“오늘 나의 불행은 과거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다.”

나폴레옹이 한 말이다.

 

 잘 보낸 시간과 잘못 보낸 시간에 대해서 시간은 언젠가 반드시 책임을 묻는다.

 즉시 묻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반드시 잘잘못을 준엄히 따진다.

그래서인지 한 해가 저물 때쯤이면 ‘일년 동안 뭘 하고 살았나’ 싶어 마음이 우울 해진다.

잘못 보낸 시간들이 불쑥 나타나 대들고 따지며 책임을 물을 것만 같아 조마조마하기도 하다.

밥 버포드는 [40 또 다른 출발점]에서 ‘인생의 전반부가 ’목표‘를 추구하는 삶이라면,

 인생의 후반부는 ’의미‘를 찾아가는 ’삶‘이라고 했다.

 

그는 마흔이라는 나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왜 하필이면 마흔일까?

40대에 들어서면 목표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목표이상의 그 무엇인가가 인생의 후반부를

 열정적으로 살아가게 할 강력한 유인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오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던 전반부의 삶이

 웬지 허전하고, 어설프고, 가볍고, 텅 빈 듯한 풍경으로 다가올 때,

우리는 그것을 메워 줄 무엇인가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마흔 살이 되면 삶을 새롭게 살기 위해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어떤 개인이든, 어떤 조직이든, 근본적인 변화의 출발점은 내면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내면의 변화란 자기 안에 있는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변화의 깊이와 넓이가 달라지고 인생의 깊이와 넓이가 달라질 수 있다.

 

어떻게 하면‘영혼의 모음’을 들을 수 있을까?

그것은 영혼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갖는 것이다.

 

먼저 시간을 갖는다는 말의 뜻은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특별시간’을 별도로 마련하라는 뜻이다.

그 시간만큼은 세상의 다른 어떤 것과도 만나지 않고 오직 자신과 고독하게 마주 앉는 것이다.

 

하루 24시간 가운데 자신에게 할애할 그 특별한 시간을 전혀 확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루 종일 자신의 영혼을 내박차고 산다는 의미다.

 

다음으로 공간을 갖는다는 것은 꼭 별도의 방을 가지라는 의미가 아니다.

숲 속 오솔길일 수도 있고, 바닷가일 수도 있고,

조용한 찻집의 구석진 자리일 수도 있다.

그 곳에 있으면 자신의 영혼이 따뜻해지는 그런 공간이라면 어디든지 좋다.

그 곳에서 자신과 호젓하게 만나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은 에너지와 관심을 먹고 자란다.

아파트 베란다나 사무실 책상의 화초도 따뜻하고 애정 어린 눈길을 보내주면

에너지를 얻어 싹을 틔우고 꽃과 열매를 맺는다.

 

그들에게도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자기 내면의 세계를 찾아가 자신의 영혼과 만나는 시간을 자주 갖는다면

그보다 의미 있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이가 들수록 영혼이 따뜻해지는 삶이 필요하다.

 

영혼이 건강해야 점점 허약해지는 육신을 지탱할 수 있다.

언제나 곁에 있어줄 것 같던 사람들이 하나 둘 자기 주변에서 떠나갈 때,

 홀로 덩그러니 남아있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늘 자신의 영혼을 건강하게 돌봐야 한다.

영혼이 가난하면 언젠가 찾아올 삶의 겨울이 너무 가혹한 모습으로 나타날지 모른다.

 

모든 겨울나기는 겨울이 오기 전에 준비해야 하듯이,

우리 역시 60세의 그 눈 내리는 겨울을 포근하게 맞이하기 위해

자신의 영혼에 따뜻한 군불을 지펴주어야 한다.

 

눈 내리는 60세의 겨울은

어쩌면 40세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삶의 둥지를 쌓느라고, 남들 치닥 꺼리 하느라고,

정신없이 분주한 와중에라도 잠시 짬을 내어 깊은 소외감에

 몸을 떨고 있을지 모르는 자신의 영혼을 위해 시간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언젠가 반드시 찾아와 책임을 물을 시간에게 대답할 말이 있을 것이다.


출처: 삶을 변화시키는 33가지 우화 중에서..(mtlab]